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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adesa saram(우파데샤 사람): 가르침의 精髓(정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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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adesa saram(우파데샤 사람): 가르침의 精髓(정수)

리얼리티3 2020. 1. 5. 12:13

아주 먼 옛날에...



Rishi(리시)(a) 들의 한 일단이, 인도 Daruka 숲에 함께 모여 살며, 儀式(의식)을 행하고, 그것에 의해 초자연적인 힘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그들은 최종적으로 해방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관해 그들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런것이 행위는 행위에로만 귀착하고, 행위의 終焉(종언)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儀式은 힘을 만들어 내지만, 儀式과 힘과 모든 형태의 행위를 초월한 해방의 안식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시바神은 그들에게 틀림(오류)을 이해시키기로 결의하고, 그들 앞에 行脚(행각)하는 Sadhu(사두)(b)로서 나타났습니다. 그와 함께 비슈누神이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으로 왔습니다. 모든 Rishi들은 이 처녀에게 홀딱 반해 버려, 그들의 평정함은 흐트러지고, 그들의 儀式과 힘은 나쁜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들과 함께 숲에 살고 있던 妻(처)들도 모두, 그 신비한 Sadhu에 매료되었습니다. 이것에 격노한 그들은 마법의 儀式으로 코끼리와 호랑이를 만들어 내어, 그 Sadhu를 향해 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시바神은 그것들을 손쉽게 처치하고, robe(옷)를 만들기 위해 코끼리의 가죽을, 어깨에 두르기 위해 호랑이의 가죽을 벗겼습니다. 이에 Rishi들은 자신들보다 강한 존재를 상대하고 있음을 깨달아, 그에게 사의를 표하고, 바른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시바神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행위의 포기(놓아 버림)에 의해 해방을 얻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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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 무르가나르(Sri Muruganar)는 이 테마로 100시절을 쓰려고 하였습니다만, 70을 넘어서부터 용이하게 진행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가반(라마나 마하르쉬)이 시바神의 가르침에 관한 시절을 쓰기에 적격인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바가반에게 시절을 지어달라는 청을 하였고, 이에 바가반은 타밀語(어)로 30시절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후에 그것을 산스크리트語로 번역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이 30시절은 바가반에 의해, 처음에는 「Anubhuti Saram(아누붓티 사람)」, 이후 「Upadesa saram(우파데샤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텔루구語로 번역되었습니다. 바가반은 동일하게 그것을 말라얄람語로 번역하였습니다.

 

산스크리트語의 Upadesa saram은 그(바가반)의 앞에서 매일, 베다와 함께 낭송되며, 그의 聖地(성지, 성당)앞에서 계속 낭송되고 있습니다. 즉, 이것은 聖典(성전)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해방으로의 여러 길을 언급하고, 그것을 효과와 탁월성 순으로 단계를 두어, 그 최고의 것은 「자기의 탐구」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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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대 인도의 전설상의 성자, 현자, 선인….고행을 통한 초능력 보유.

b. 수행자, 고행승(현, 인도각지, 네팔에 4~500만명가량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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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adesa saram(우파데샤 사람): 가르침의 精髓(정수) by 라마나 마하르쉬



본문

 

 

1. 카르마(행위)의 결과는 神(신)에 의해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카르마(행위)란 神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행위에는 (생명)意識(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2. 행위의 결과는 지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행위자를 카르마의 大海(대해)로 집어넣는 씨앗을 남긴다.

   그러므로 행위가 해방(해탈, 구원)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

 

3. 그러나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신에 대한 봉사로서의 행위는 마음을 淨化(정화)시켜 해방으로 이끌어 준다.

 

4. 몸을 통한 참배(예배, 숭배)보다도, 말로하는 Japa(稱名: 신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외는 것)가 뛰어나다.

   그보다 마음에  의한 명상이 더 탁월하다.

 

5. 地(지), 水(수), 火(화), 風(풍), 하늘, 태양, 달, 個我(개아), Jiva(영혼 혹은 생물전체)로 비롯한 삼라물상을, 神의 모습으로 보는것은 神에 대한 최상의 경배이다.

 

6. 큰 목소리를 통한 神에 대한 贊歌(찬가)보다도, 작은 목소리의 稱名(칭명)이 뛰어나다.

   가장 뛰어난 명상은 마음속으로 하는 稱名이다.

 

7. 斷續(단속, 혹은 간헐)적 명상보다도, 흐르는 기름이나 강물처럼 끊어지지 않는 명상이 더 뛰어나다.

 

8. 神과 나는 다르다라는 관점의 명상보다도, ‘神은 나이다’, ‘그는 나이다’, 라고 명상하는 쪽이 뛰어나다.

 

9. 강렬한 명상을 통해 想念(상념)이 없는 實在(실재)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이 至高(지고)의 歸依(귀의)이다.

 

10. 마음이 Heart(하트)의 근원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카르마-요가(행위), 박티-요가(信愛: 신애, 歸依), Yoga(요가: 合一), 즈냐나-요가(英智: 영지) 이다.

 

11. 호흡이 제어되면, 그물망에 잡힌 새처럼 마음은 진정된다. 호흡제어는 마음의 제어법이다.

 

12. 마음과 호흡은, 사고와 행위라는 2개의 나뭇가지. 그들은 Shakti(샥티: 원초의 힘)라는 하나의 뿌리로부터 나타난다.

 

13. 마음의 진정에는 몰입과 소멸의 두 종류가 있다. 일시적인 마음의 몰입은 (마음이)다시 나타나지만, 소멸하면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아니한다.

 

14. 호흡제어에 의해 가라앉은 마음은, 내면으로 향하는, 그 하나만의 想念을 통해 소멸한다.

 

15. 마음이 소멸하여, 眞我(진아)의 경지에 도달한 위대한 賢者(현자)에게는 더이상 해야 할 카르마(행위)는 없다.

 

16. 마음이 외적 대상(물)을 놓아버리고, 내면으로 향하여 그 자신의 찬연히 빛나는 모습을 보는(인식하는) 것, 그것이 진짜 英智(Jnana: 즈냐나) 이다.

 

17. 마음이 끊임없이 자신의 본성을 탐구한다면, 마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18. 마음은 想念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想念은 ‘나(I)’ 라는 想念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想念은 ‘나(I)’ 라는 想念에 지나지 않는다.

 

19. 이 ‘나(I)’ 는 어디에서부터 생겨나는가? 라고 내면을 찾아보면 ‘나(I)’ 는 소멸한다. 이것이 英智(Jnana: 즈냐나)의 탐구이다.

 

20. ‘나(I)’ 가 녹아 사라지는 곳에, 眞我는 저절로 ‘나(I) - 나(I)’ 로서 나타난다. 그것이 무한한 자기(Self)의 존재이다.

 

21. 그것이 ‘나(I)’의 진짜 의미이다. 왜냐하면, ‘나(I)’ 라는 감각이 없는 수면중에도, 우리들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22. 육체, 감각, 마음, 호흡, 수면, 이들은 (생명)意識을 가지지 않으므로 實在가 아니다. 이들은 ‘나(I)’ 가 아니다. ‘나(I)’ 가 實在인 것이다.

 

23. 존재하는 ‘그것’ 을 아는 다른 존재는 없다. 그러므로 ‘존재’ 는 ‘意識’ 이다. 우리들은 ‘意識’ 인 것이다.

 

24. ‘神’ 과 개인의 ‘Soul(영)’ 은 그 본성에 있어서 하나이다. 이 둘의 차이는 ‘지성’ 과 ‘속성’ 밖에는 없다.

 

25. 모든 ‘속성’ 을 제거한 자기자신을 보는 것은 ‘神’ 을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神’ 은 우리들의 ‘眞我’ 로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26. ‘眞我’ 를 아는 것은 ‘眞我’ 로서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眞我’ 에 이원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實在에 확립된 경지이다.

 

27. 진짜 지식은, 지식과 무지의 양방을 초월한다. 왜냐하면 순수한 지식안에, 알아야만 할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28. 자기의 본성을 알게 될 때, 사람은 시작도 끝도 없는 불멸의 意識과 至福(지복)으로서 있다.

 

29. 속박과 해방도 초월한 이 至福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이야말로 主(주, 至高者)에 대한 無窮(무궁)의 봉사이다.

 

30. 自我(자아)의 흔적을 지우고, 단지 ‘그것’ 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苦行(고행)이다라고, ‘眞我’ 인 라마나는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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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많은 영역이 존재하여 편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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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Tha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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